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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설교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9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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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설교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93장) 찬송설교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9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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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93장)
성경: 고후 5:17, 찬송: 288,320,438
중생의 체험은 놀랍고도 신비한 것이다. 중생을 통하여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기쁨, 평화, 확신을 누리게 된 즐거움을 마치 어린 아이가 뛰노는 듯한 벅찬 감격으로 고백하고 있는 이 찬송은 평남 강동 태생의 이호운(1911-1969)목사가 작시하였다. 그는 대전 감리교 신학교의 교장이 되어 후학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곡은 경북 대구 출신의 음악가로서 연세대 음대교수를 지냈으며 1952년 미국 우스터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은 박태준(1900- )박사가 만들었다.
보라 이제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는 바울의 환희에 찬 탄성을 떠올리게 한다.
중생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의 모습을 옛 사람의 모습과 비교하며 극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 되었으며(1절), 이전에 좋던 것들도 이제는 값없이 여겨지게 되었으며(2절),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하였으며(3절). 심지어는 자연물인 산천과 초목도 새것이 되었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마지막 4절에서는 주 따라 가는 길 아무리 험하고 멀어도 나주를 모시고 영원히 찬송하며 살리라는 고백으로 마감하고 있다.
1절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1절에서 “나 이제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 얻음으로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 되었도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요, 이전 것은 다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신령한 존재로 만드시고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조상인 아담은 사단의 말에 미혹되어 범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육체로 전락되었으며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창 6: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나므로 육체가 된 사람은 죄악을 생산하는 공장 같아서 날마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으며, 디모데후서 3:1-4절에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요 8:44) 하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면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 12:2절의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니라"하신 말씀을 처음 읽을 때도 은혜가 되었는데 지금도 읽으면 또 은혜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새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겉 사람은 부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 51편 9-10절에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한 대로 우리의 심령은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변하면 얼굴도 변하고 언어도 변합니다. 언어가 변하면 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듭난 새사람은 변합니다.
첫째, 마음이 새롭게 변합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 보면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하였고, 빌 2:5절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나도 싫어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나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지식이 새롭게 변합니다.
요한복음 4장 10-14 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대화하신 것을 보면 수가성의 여자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그 마음에 영접한 후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하며 예수를 증거 하였습니다. 그 결정적인 변화가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수”(요 4:13-14)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신분이 새롭게 변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으니 거듭난 새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였으니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히브리서 8장 10절에 보면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으니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신분이 새롭게 변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
새롭게 변화된 마음으로, 새롭게 변화된 지식으로, 새롭게 변화된 신분으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 멘.
2절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2절에서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들도 이제는 값없이 여겨지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강권적으로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 3일간의 식음전패,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보게 되는 일, 그리고 3년간의 아라비아 사막에서의 수도생활을 통해 성령의 새 사람으로 놀랍게 거듭났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했으며 이제 자신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을 그를 사랑하사 그를 위하여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갈 2:20)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다 쉬운 말로 직역 해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산다. 그러나 내가 아니다.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면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실존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바울은 갈 2장 20절에서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요 새 사람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첫째,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이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 사울이었을 때 “그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들의 엄한 율법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있는 자로 예수의 도를 전하는 자를 핍박하여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던 자였습니다.”(행 22:3-4)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사도가 된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빌립보서 3장 8-9절에 고백을 하였습니다.
정말 여러분 속에도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최고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주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것을 제일로 여기며 경배하고 있습니까? 예수 믿고 신앙 안에 새롭게 된 자들은 시편 73편 28절에 있는 대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가장 큰 복이라 여기고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전적인 은혜와 평강을 맛본 후에 로마서 1장 7절을 필두로 , 롬 16:20, 고전 1:3, 고후 1:2, 갈 1:3, 엡 1:2, 빌 1:2, 골 1:2, 살전 1:1, 살후 1:2, 딤전 1:2, 딤후 1:2, 딛 1:4, 몬 1:3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며 은혜와 평강의 인사를 하였다는 것은 바울이 예수 믿고 새롭게거듭난 후에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제자 요한 역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렇듯 예수를 믿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은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참된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삽니다.
셋째,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26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소녀점쟁이가 방해를 하므로 소녀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들린 소녀를 고용하여 돈벌이를 하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그들은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밤중이란 말은 시각적으로 어두움을 말할 뿐 아니라 마음속에 절망과 슬픔이 꽉 들어차 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때야말로 마귀가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면서 참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마귀의 참소에 넘어가 하나님을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밤중에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 찬미하며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옥터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려 바울과 실라 뿐만 아니라 다른 죄수들도 묶인 것이 모두 풀어지고 자유롭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 할지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 믿음으로 새롭게 된 자는 어떤 형편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롬 8:28)을 믿고 찬송과 기도로 살아가는 자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절 산천도 초목도 새 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3절에서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사는 자들의 마음을 새 하늘로 표현하며 구체적으로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하며 심지어는 산천과 초목도 새것처럼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지혜로운 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강가에서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일순간 그는 자신의 옷을 무릎까지 걷어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첨벙첨벙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강바닥을 더듬었습니다.
잠시 뒤 강가로 다시 올라온 그의 손에는 제법 큼지막한 조약돌 하나가 쥐여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조약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 돌을 깨뜨린다면 이 돌 속이 젖어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말라있을 것 같습니까?"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말라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이는 방금 강에서 끄집어내었으니까, 또 강 속에 오랫동안 담겨져 있었으니까 그 속도 젖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돌을 깨뜨렸습니다. 물론 그 속은 하얗게 말라 있었습니다. 현자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러한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말처럼 흔하게 쓰여 지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강물처럼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 돌처럼 겉만 젖어있고 속은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조약돌에서 물을 짜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서도 결코 사랑은 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마음으로 하는 친절이나 선행은 기껏해야 외식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항상 마음으로부터 먼저 우러나와야 합니다. 아울러서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좋은 것이로되 우리 마음속에만 갇혀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질 때 비로소 사랑은 의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4절~21절 말씀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를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하므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화해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막힌 담을 헐고 화해케 하고 사람과 사람을, 자아와 양심을 화목케 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되고, 우리는 위로부터 큰 긍휼을 받았기에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되고, 큰 은혜를 값없이 주님이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남을 도와주어야 되고, 불쌍히 여김을 받았기에 불쌍히 여겨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용서함 받은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담을 헐고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듯이 지난날의 나쁜 감정과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먼저 형제 안에서 화목하시고 죄인도 원수도 사랑하므로 친구로 변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따라가리라
나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4절에서는 “주 따라 가는 길 아무리 험하고 멀어도 나주를 모시고 영원히 찬송하며 살리라”는 고백으로 마감하고 있다.
영혼 속에서 우러나는 찬송과 감사는 죄악과 절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려움이 다가온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여 불만을 늘어놓으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인생의 밤이 깊습니까? 환경의 밤이 깊어만 갑니까?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오늘도 내일도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쉬지 않고 주 따라가며 힘차게 부르십시오. 감사 찬송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를 살기 좋게 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게 하고 기적을 베풀게 하며 건강하게 하고 삶을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선물로 드리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어두운 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바로 찬송과 감사와 믿음뿐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 함께 살리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 맡기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가로 다가가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저의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것입니까? 하나님 이 교회가 저의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의 세상이고 하나님의 교회라면 이것들을 돌봐주십시오. 저는 잠을 자러 갑니다 하나님 부탁합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주 섬기며 산다”는 것은 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짐을 나 혼자서 지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불신입니다. 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둘째, 의지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경솔하게도 그 꿈을 자랑삼아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수를 복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주 섬기며 산다”는 것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복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 우리의 허물 그것을 탓하지 않으십니다. 크신 은총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실수도 복으로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수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허물 때문에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면 그것들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셋째,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에 가족들을 이끌고 먼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며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주 섬기며 산다”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자기의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앞 날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오늘도 내일도 주와 함께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뤼미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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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5 11:47
ㄳ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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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5 12:55
감사합니다



